Poem&Essay 130

겨울 숲에서 ... 안도현 詩

겨울 숲에서 ... 안도현 詩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 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 것 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 사방 가슴 벅..

Poem&Essay 2021.12.27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 태주 詩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개끔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려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대송(對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울부터 초겨울..

Poem&Essay 2021.11.22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 김왕노 詩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 김왕노 詩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르고 떠난 후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누군가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가를 알지만 자작나무니 풀꽃으로 부르기 위해 제 영혼의 입술을 가다듬고 셀 수 없이 익혔을 아름다운 발성법 누구나 애절하게 한 사람을 그 무엇이라 부르고 싶거나 부르지만 한 사람은 부르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거나 세상 건너편에 서있다 우리가 서로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무엇이 되어 어둑한 골목에 환한 외등이나 꽃으로 밤새 타오르며 기다리자 새벽이 오는 발소리를 그렇게 기다리자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불러주었듯 너를 별이라 불러주었을 때 캄캄한 자작나무숲 위로 네가 별로 떠올라 휘날리면 나만의 별이라 ..

Poem&Essay 2021.11.18

일상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 ...신해숙 詩

일상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 - 신해숙 詩 빨래를 하다가 고무장갑을 벗고 차를 끓이게 하는 사람. 서점에 들렀을 때 같은 책을 두 권 사게 만드는 사람. 홀로인 시간, 거울 속의 나이든 나에게 소녀같은 미소를 짓게 하는 사람. 안 마시던 커피를 하루에 두어 잔은 꼭 마시게 하며 그때마다 살포시 가슴에 내려앉는 사람.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며 콧노래를 부르는 여유로운 정서를 가진 사람. 굳이 선을 그으라면 헤어짐이 예견된 사선보다는 한결 같이 머무는 평행선 같은 사람. 낮게 핀 야생화에게 경의를 표하며 높고 낮음이 따로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사람. 그런 사람을 일상에서 만나고 싶다. My daring.. 처음부터 위 詩와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런 사람으로 조율해 가며 살고 있다 그는 조종당하고 있다고 생각..

Poem&Essay 2021.11.16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詩

만추(晩秋)...늦은 가을 무렵 영어로는 Late Autumn 임을 오늘 알았다..ㅎ 탕웨이 주연의 영화 만추도 있었지....! Anyway...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어제보다 늙어가는 내가 아니라 더 아름답게 익어가는 나를 위하여....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詩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

Poem&Essay 2021.11.13

나태주 풀꽃 시인이 청춘들에게 전하는 위로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2 나태주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우리 비록... 생리적 나이는 청춘을 한참 지났지만 마음은 영원히 푸른 청춘 아닌가요? 詩를 읽고 있으면 이내 열다섯 소녀로 돌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 . .

Poem&Essay 2021.11.06

인생 ... 라이너 마리아 릴케 詩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 라이너 마리아 릴케 詩 ......................................................................................................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내버려 두면 축제가 될 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하루하루가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꽃잎들을 모아 간직해두는 일 따위에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 머리카락 속으로 기꺼이 날아들어 온 꽃잎들을 아이는 살며시 떼어내고 사랑스러운 젊은 시절을 향해 더욱 새로운 꽃잎을 달라 두 손을 내민다 - 김재혁 譯 You don’t have to understand..

Poem&Essay 2021.09.04

초여름 숲처럼 ... 문정희 詩

초록의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이 오면 늘 꺼내보고 처음 읽은 듯 감탄하게 되는 詩이다 그래... 사람아... 우리 서로 편안히 바라다 볼 수 있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 서 있자.... 초여름 숲처럼 문정희 詩 나무와 나무 사이엔 푸른 하늘이 흐르고 있듯이 그대와 나 사이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신전의 두 기둥처럼 마주 보고 서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쓸쓸히 회랑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오늘 저 초여름 숲처럼 그대를 향해 나는 푸른 숨결을 내뿜을 수밖에 없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서 서로를 쑤실 가시도 없이 너무 멀어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 길을 만드는 일도 없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푸른 하늘처럼 그대와 나 사이 저 초여름 숲처럼 푸른 강 하나 흐르게 하고 기대려 하지 말고, 추워하지 말고, 서로..

Poem&Essay 2021.08.26

비(雨)는 소리부터 내린다 / 이외수 詩

이외수 젊은 날 내 인생의 멘토중의 한사람이었다 예리하고 섬세한 필력 세상과 불화하는 그의 아웃사이더 인생에 끌렸고 온몸의 살들은 다 공기중에 날려버린 듯 살점 하나없이 뼈만 앙상한 그의 육체가 진실한 生을 향한 절규인 것 같아 더욱 좋았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허(虛)와실(實)속에 그의 실제 인성과 삶이 낱낱이 벗겨지고 많이 실망하고 화도 나고 비난 아닌 비난도 하고 그런데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 감히 누가 누구를 평가할 수 있을까 현재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1년 넘게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고 있으며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발병 전 이혼을 요구했지만 졸혼으로 합의, 이외수를 떠났던 그의 부인은 다시 그의 곁으로 와서 그를 간호하고 있다 질기고 질긴 것이 사람의 인연이고 부부의 情이 아닐..

Poem&Essay 2021.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