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하며 무릎으로 사막을 건너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의 육체 안에 있는 연약한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하면 된다.
너의 절망에 대해 말하라, 그럼 내 절망에 대하 말할 테니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빗방울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너머로
그러는 사이에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 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네가 상상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너에게 외친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너의 자리가 있다고.
You do not have to be good.
좋은 시는 읽을 때 다른 시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시가 가진 현존의 힘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좋은 시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게 하는 힘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현대 시인 중 한 명인
메리 올리버의 그 많은 시집들이 왜 한 권도 번역되지 않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시는 1999년에 내가 엮은 환경시집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에 처음 소개해
많이 애송되었으나 출판사 사정으로 얼마 후 절판되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부터 나의 작업실을 드나든 소설가 김연수가
이 시에서 제목을 딴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발표해 다시 알려졌다.
오늘 새벽, 이 시를 다시 번역했다.
좋은 시는 세월을 두고 다시 읽어도 언제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소통은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소통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절망은 절망만이 이해할 수 있다.
세계는 내가 상상하는 대로 모습을 드러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안의 '여린 나'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류시화 시인의 페이스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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